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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영화

애로배우와 공갈자해 사기꾼이 만날 때, 영화‘핑크토끼’

by 밥이야기 2009.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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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산 대박영화보다 독립영화가 좋다. ‘워낭소리’와 ‘낮술’이 그렇다. 저예산 독립 장편영화 ‘핑크 토끼’. 핑크 토끼를 보면서 애로배우와 공갈자해 사기꾼이 만난 부산 사상지역의 풍경 속에 잠시 빠졌다. ‘핑크 토끼’는 단편 '과메기'와 ‘갈치'로 작품성을 인정 받은 김회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 핑크 토끼의 촬영지는 부산 사상구. 어렸을 때 스쳐 지나갔던, 사상공단지역의 풍경들이 떠올랐다. 공단의 낮은 불빛, 염색 냄새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밑바닥 인생들이 좌절하고 다시 희망을 살려 이어 가는 이야기다. 애로배우와 사기꾼이 등장해서 애로틱한 장면이 나올 것 같지만 애로틱하고는 담 쌓은 영화다.

 
운동을 하는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는 여주인공 다해. 나이는 들었지만 뾰죽한 생계 수단이 없어 공갈자해단으로 생활하는 백한근. 다해는 포르노 집중단속(애로배우)에 걸려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사회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백한근은 온 몸으로 차에 몸을 던져 팔과 다리가 다친채 나홀로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복지사의 지시로 백한근의 간호를 돕게 되는 다해. 이렇게 애로배우와 공갈자해범은 만나게 된다. 백한근의 통장에는 공갈 협박으로 받은 돈이 꽤 있지만, 위장 기초 생활 수급자.  

 
애로배우를 선택할 수 없는 삶. 사기 중에서 가장 저급 사기로 통하는 공갈자해단으로 삶을 꾸려가는 사기꾼. 영화 장면과 대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건조하다. 억지웃음도 불러 내지 않는다. 반지하 불빛이 켜지고, 산 중턱에 있는 고층 연립주택이 보인다. 5층이지만 높다. 높지만 아파트 얼룩진 벽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옥탑방 넘어 산에 삶의 불빛을 깜박이는 집들이 보인다.

 




다해는 “사는게 지랄 같지 않아요”라고 백한근에게 묻는다. 백한근은 “지랄까지는 아니고 염병할 정도”라고 대답한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인생행로. 이들이 인생역전을 노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다해가 방 안에 핑크토끼를 놓고 대화하듯, 백한근이 핑크토끼를 보면서 다해를 그리워하듯 희망이 엿보인다. 핑크토끼가 엿보고 있다.

 

영화 핑크토끼는 100% 부산지역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 70%가 등장한 부산 사상구는 핑크토끼를 위해 제작지원까지 했다. 영화의 주무대였던 백한근의 아파트는 재개발을 앞둔 ‘해송아파트’다. 5개 동 중 비어 있는 2개동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세월은 간다. 국민 요정 김연아의 모습이 스쳐지나갔고, 한미FTA협상,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장면 촛불로 이어진 소리 없는 함성이 숨겨 나온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처럼 큰 변화는 없다. 작은 일상의 변화가 밀물져 온다.

  영화 ‘핑크토끼’는 한편의 방송용 ‘베스트셀러 극장’ 같다. 낯선 배우들. 어색한 대화. 그렇지만 삶의 풍경이 과장 없이 오롯이 담겨있다. 독립영화의 매력 이다. 남들이 웃지 않는 장면이지만 웃음이 기억을 따라 미소 짓게 만든다. 공원마다 이리 저리 뒹굴어 찌그러진 캔맥주처럼, 캔맥주 한 잔 들이키게 만들 수 있는 핑크토끼. 그 많은 핑크토끼들은 꿈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과연 영화 핑크토끼의 애로배우와 공갈사기꾼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영화는 부산 국도극장에서 상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