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밥

낸시랭은 우리시대 '낭만고양이'다

by 밥이야기 2009. 11. 3.
728x90

- 낸시랭, 팝아트와 키치의 경계


이발소 그림은 예술일까? 복제된 경박한 키치일까? 낸시랭은 예술가일까, 쇼맨십으로 무장한 시대의 탤런트일까?

 

미술 관련 책을 읽다가 낸시랭(박혜령)의 작품을 보았다. 낸시랭이 유별난 것일까? 낸시랭의 작품이 유별난 것일까? 별 없는 새벽 낸시랭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답은 없지만. 랜시랭을 보는 시각은 다양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낸시랭의 천방지축 행위 때문일까. 그 행위 안에는 선정성도 담겨있다. 문제는 선정성이 너무 부각되어 낸시랭의 의도된 세계를 놓쳐버릴 수 도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낸시랭을 보고 예술가야 연예인이냐? 외설가야? 헷갈릴 때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헷갈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이 말은 좋은 뜻이 아니다. 문화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다.

 
낸시랭은 분명 예술가다. 예술가는 독점적 지위나 명예가 아니다. 미술대학 졸업했다고 다 화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향과 가치의 문제다. 나 홀로 예술가라고 하는데, 누가 딴죽 걸랴. 낸시랭의 작품을 쓰레기나 포르노그래피라 불러도 좋다. 과거의 쓰레기로 평가 받았던 작품이 현재에 몇 십억 이상 호가로 팔리고 있지 않은가? 낸시랭의 작품을 사람들은 천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천박도 예술이다. 낸시랭과 낸시랭의 작품 안에는 미술 현대사의 실험 정신이 복제되고 모방되어 있다. 그렇다면 복제품은 예술인가? 예술이다. 앤디워홀이 미술공장을 차려 코카콜라 만들 듯이 그림을 팔아 해치웠다. 예술의 고등사기다. 그렇다고 사기가 예술은 아니다. 세계 비디오아트의 큰 족적을 남긴 백남준은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이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앤디워홀을 현대 팝아트의 대가라고 부르지 않는가? 낸시랭은 작품은 팝아트와 키치의 경계에 있다. 팝아트와 키치를 분리해서 글을 쓰면 각 각 책 한 권의 분량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고 백과사전식 의미만 살펴보자.

 

팝아트 : 리처드 해밀턴에 의하면 팝 아트는 "통속적이고, 일시적이고, 소비적이고, 값싸고, 대량 생산적이며, 재치 있고, 관능적이고, 선동적이고, 활기차고, 대기업적인…… 미술 양식"이다……. 워홀은 "나는 모든 사람이 일종의 기계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을 자신의 모토로 삼았으며 실제 작업에 있어서도 기계가 하듯 작품을 제작하려고 노력했다. 팝 아트는 일반대중에게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 서양의 산업국가에서 발생한 매스 미디어와 고도의 산업사회에 적합한 대표적인 미술양식으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팝 미술가들이 스스로 내건 목표는 바로 생활과 구별할 수 없는 미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키치 : 저속한 작품’이라는 뜻. ‘싸게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동사 ‘verkitschen’에서 유래된 말. 미술 평론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1939년 ‘아방가르드와 키치’라는 논문에서 “키치는 간접 경험이며 모방된 감각이다. 키치는 양식에 따라 변화하지만 본질은 똑같다. 키치는 이 시대의 삶에 나타난 모든 가짜의 요약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키치’라는 용어의 어원

- 영어의 스케치sketch,
- 독일어 동사 키췐 kitchen `진흙을 문대며 논다'
- 메클렌부르크 방언 verkitschen ‘값싸게 만들다'
- 러시아어 동사 keetcheetsya ‘건방지고 우쭐대는 것’

클레멘트 그린버그

“참된 문화의 가치에는 무감각하면서도 특정 문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 문화가 곧 키치”

움베르토 에코

“너무나 빈번히 사용되어 진부하게 보이는 것, 그래서 대중에게도 다가서는 것,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는 서구형 사회가 공유하는 현상”

칼리니스쿠

“현대의 정신적 진공상태에 대한 반응과 여가를 재미와 흥분으로 채우며 공허한 시간과 공간을 아름다운 가상으로 메우려 하는 것”

 



그렇다면 팝아트와 키치 아트의 경계는 어디일까? 팝아트는 예술이고 키치는 예술이 아닐까? 예술이다. 물론 논란은 있을 수 있다. 낸시랭은 팝아트와 키치를 오락가락 하며 예술 행위를 펼치고 있다. 신디 셔먼처럼 과거의 명화에 복제된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엉덩이를 흔들며 조롱한다. 신디 셔먼은 유명 영화배우를 모방해서 사진작업을 했지만, 낸시랭은 불빛 쓰러져가는 오래된 술집, 하지만 비키니 입은 사진달력이 휑하니 걸린 사진 속에 여인이 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신디 셔먼 작품(왼쪽) : 명화 속의 장면으로 들어가 연출한 사진. 남성상을 신디셔먼(여성)으로 교체. 낸시랭의 작품(오른쪽) : 사우나에서 연주하고 있는 낸시랭




 ▲앤디워홀의 통조림(왼쪽), 낸시랭의 통조림(오른쪽)



▲ 팝아트,키치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제프 쿤스의 작품과 낸시랭의 작품




낸시랭은 "저는 돈을 너무 사랑한다. 항상 '아이러브달러'라고 외치고 다녔다. 예술 작품을 하고 싶은데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라고 이야기 했다. 맞다 틀린 말이 아니다. 돈만으로 돈 때문에 예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힘들다. 부모 잘 만나 호강하며 그림만 그리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낸시랭은 차라리 솔직하다.

 

낸시랭은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하고 싶어 돈을 찾았다. 돈이 되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한다. 고흐처럼 동생만 바라보고 살수는 없다. 낸시랭은 부모도 없다. 혼자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삶. 지난 31일 낸시랭은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무한청춘엔진' 스타 강연회에서 김제동, 장기하, 진중권, 박원순 변호사 등 내노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얼굴을 내밀어 채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불렀다.



 


 ▲ 2003년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낸시랭



낸시랭은 2003년 초대받지도 않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해 산 마르코 성당 앞에서 속옷 바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를 했다. 백남준이 예술에 대해 정의 내렸듯 대중들을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낸시랭과 낸시랭의 작품이 하나이든 이중적이듯(낸시랭 자체가 행위예술), 바라보는 잣대 또한 이중적(예술과 포르노)일 수 있다. 평가는 자유다. 다만 낸시랭을 탄생하게 만든 사회나 세상의 배경을 드러나 본다면 낸시랭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 설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천지(on-off)에 도배된 것이 외설인데, 낸시랭의 예술 행위를 외설로 깡통 포장하듯 쑥 담아 던지지 말자. 낸시랭이 낭만고양이를 부르면서 삶을 이어가고 예술가로 거듭나게 지켜보자. 낸시랭 같은 낭만고양이 같은 예술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은가?

한 때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신정아'보다 낸시랭이 더 솔직하지 않을까? 신정아는 권력지향적이었다. 학력도 속이고 철저하게 상위 20%에 들기 위해 몸과 머리를 짜냈다.  낸시랭은 권력지향적일 수 있지만, 자신의 몸과 정신을 던져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신정아 씨가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 몰라도 할 수 없다. 낸시랭을 그냥 천박한 포르노아티스트라고 부르지 말자. 오히려 겉만 도덕적이며, 속은 위선으로 가득찬 썩은 권력보다 낫지 않은가?

 

나는 낭만 고양이
슬픈 도시를 비춰 춤추는 작은 별빛
나는 낭만 고양이
홀로 떠나가 버린 깊고 슬픈 나의 바다여

깊은 바다 자유롭게 날던 내가
한없이 밑으로만 가라앉고 있는데
이젠 바다로 떠날거에요(더 자유롭게)
거미로 그물쳐서 물고기 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