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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신영복 영결식, 평생 스승으로 잊지 않겠습니다!

by 밥이야기 2016.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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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8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에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과 유해가 운구되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옵나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아픔이 마음속 깊숙히 파고듭니다. 바깥 추위가 아니라 속내의 차가운 현실의 파도가 일렁거립니다. 작년 신영복 교수님의 나누었던 마지막 인터뷰 중에 글을 공유할까 합니다. 다시 한 번..."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웹진 '다들'...마지막 인터뷰가 되어버린 인터뷰 중에>

--<담론>에서 공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대목 역시 실천의 의미를 강조하신 겁니까?

신영복:머리로 이해하는 게 소위 말하는 합리주의적 사고입니다. 그런 공부는 텍스트에 밑줄 치고 암기하면서 하는 건데 크게 어렵지 않아요. 가슴까지 와야 한다는 건 공부 대상에 대한 공감과 애정으로 나가야 진정한 공부라는 뜻입니다. 처음 5~6년 감옥살이할 때 함께 징역 사는 숱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들을 대상화하거나 분석하곤 했지요. 그러다 차츰 ‘아, 나도 저 사람 부모 같은 사람 만나 저런 인생 역정을 거쳤으면 똑같은 죄명으로 감옥에 앉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더라구요. 대상화하고 분석하는 근대적 인식틀이 조금씩 깨져나갔던 것이지요. 그 사람들과의 공감과 애정, 이런 게 생기면서 내 공부가 가슴까지 온 것입니다. 스스로 대단한 발전이라고 여겼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담론>에도 썼듯이 감옥에서 집을 그리는데, 책을 읽으며 머리로만 공부했던 나는 지붕부터 그려나간 반면, 같이 징역을 살았던 노인 목수는 집을 짓는 순서 그대로 주춧돌부터 그리더군요.
바로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노인더러 ‘당신은 주춧돌부터 그리세요, 나는 지붕부터 그립니다’ 하면서 ‘우리 사이의 차이와 다양성을 승인하고 평화롭게 공존하자’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그럴 듯 한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서구 근대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윤리가 공존과 톨레랑스인데, 톨레랑스에는 강자의 패권적 사고가 스며 있습니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을 승인할 것이 아니라 이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해서 자기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이란 것은 자기 변화의 교본입니다. 이런 변화를 위한 실천으로까지 나아가야 진정한 공부라는 겁니다. 그래서 참된 공부는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스승이란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승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우리 시대의 스승, 우리 당대의 사표는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신영복: 개인에게서 전인격적인 사표를 찾으면 안 됩니다. 그보다는 집단 지성이 한결 중요하지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하나의 종합적인 지혜를 만들어 가는 것, 함께 공부하는 평생학습의 가장 뛰어난 점이 바로 그것 아닙니까? 함께 공부하고 더불어 학습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벗이며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 지성이 표출되면 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표가 되는 것이지요. 중국 명나라 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친구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사람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훌륭한 개인이 우리 시대의 스승 혹은 사표가 되어서 길을 밝혀주길 바라는데요?원래 ‘스승’ 혹은 ‘사표’는 당대 사회에는 없는 법입니다. 당대에서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계급의 이해관계, 혹은 집단간의 갈등,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다산 정약용도 당대에는 전혀 사표가 아니었어요. 연암 박지원도 마찬가지구요. 정약용 같은 사람이 역사에 실존했었다는 게 우리에게 큰 자산이고 교훈이지만 다산도 당대에서는 그냥 죄인이었거든요. 사표와 스승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