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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신영복 피부암 별세, 모든 이가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

by 밥이야기 201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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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성공회대 석좌교수)께서 어제(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향년 75세.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투병 중이셨습니다.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졌습니다. 너무 슬픈 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00년 아름다운재단 설립 기획실장(이후 초대 사무처장)으로 일할 때, 신영복 선생님(이하 선생님)의 도움(서체 등)을 받기 위해 여러 차례 만났던 것을 기억해 봅니다. 그 이후 많이 찾지 못했습니다. 작년 선생님이 펴낸 '담론'. 어찌 잊겠습니다. 지난 시절, 아니 잊을 수 없는 시절. 선생님은 감옥에서 20년을 보내면서 생각과 담론을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일반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읽고 사색했던 책. 2015년 11월 중순 웹진 00(가칭) 창간호(1호) 인터뷰를 통해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이 마지막 인터뷰이...선생님. 이른 새벽에 바깥에 서서 눈을 잠시 감아봅니다.

선생님.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웹진에 수록된 원고 중에 발췌해서 공유합니다(아래글). 마음으로 오랫동안 내용을 간직하길 바랍니다

 " 모든 이가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창간 인터뷰(발췌)

-병마와 싸우고 계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디가 아프고, 최근 병세는 어떠신지요?
“지난해 가을에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미 그 때, 여러 군데 전이가 되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하더군. 의사인 후배 교수 두 분이 아주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증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 프로그램에 들어가 집중 치료를 받고 있구요.”

-어떤 암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흑색종암이라구요. 햇빛이 귀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암이라고 하더군요. 햇빛을 오래 못 받으면 걸릴 수 있다는 거지요. 통상적으로는 잘 발병을 안 한데요.”

-혹시 감옥생활, 특히 독방에 오래 계시면서 햇빛을 잘 못 받아 그런 것 아닐까요? 최근 상태는 어떠십니까?
“임상 실험 프로그램을 시작한 뒤에는 한동안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7~8개월 지나고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다시 조금 안 좋아지고 있네요. 지금은 다른 치료법으로 바꾸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빠른 호전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음 굳게 잡수시고 투병 생활 잘 하시길 바랍니다.
“하도 고비를 많이 넘긴 사람이라,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담담합니다.”(웃음)

-몇 년 전 방송인 김제동씨와 했던 인터뷰에서 20년의 감옥생활을 견딘 힘이‘깨달음’이라고 하셨더군요.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라구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깨달음은 어떤 것이길래 그리 큰 힘이 되었습니까?
“깨달음은 바깥으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고, 안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성찰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깨달음이란 게 우리가 느끼는 가장 깊이 있는 행복이지요. 감옥 가니까 일반수들이 저한테 무기수가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많이 보냐고 물어요. 그 사람들한테는 징역 만기날짜를 기다리는 게 생활의 전부입니다. 돌멩이로 벽에 달력을 그려놓고는 하루 지나가면 금하나 긋고 또하루 지나면 또하나 긋고, 그런 식이지요. 오늘이란 게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 하나로 살아가는 겁니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루하니까 오전에 금 하나 긋고, 오후에 거기에 반대 방향으로 금을 그어서 X자를 그리기도 하구요.

-무기수는 사정이 다른가요?
“많이 다릅니다. 무기수는 하루가 빨리 간다고 별로 좋을 게 없잖아요. 다만 오늘 하루가 보람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지요. 그 보람이란 게 사람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제 경우는 세계에 대한 깨달음,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하면서 스스로가 아주 새롭게 변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기약 없는 세월 속에서 유일한 보람이었지요.”

-바로 그 보람이 감옥생활을 견디는 힘이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폴 에르되시라는 헝가리 수학자가 있었어요. 세계적인 수학자인데,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이렇게 묘비명을 써 놓았다고 해요.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어리석어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깨달아가면 모르는 게 더 많아지거든요. 점점 깨달을수록 어리석어진다는 말이 실감 나게 됩니다. 그런데 죽으면 더이상 어리석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그런 식으로 한 것이지요. 이 무한한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주 미미하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공부하고 성찰할 게 엄청나게 많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이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견디는 힘이였지요.

-방금 말씀하신 것들은 감옥에서 읽은 책들의 영향인가요?
“나는 감옥에서 책 몇 권 읽고 나왔다, 뭐 이런 얘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책이 중요하지 않고,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기 재구성 능력이 훨씬 중요하지요. 감옥에서는 전혀 예상치도 않게, 자기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들, 밖에 있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그런 사람들과 만나게 되지요.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 많은 사연들을 접하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팔만대장경이지요. 기상 한 시간 전인 새벽에, 옆 사람 깨지 않게 무 뽑듯이 몸을 뽑아서 벽에 기대면 냉기가 온몸에 확 퍼집니다. 몸서리가 처지고 정신이 깨어나지요. 바로 그 시간에 어제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던 팔만대장경 같은 수평적 사연들을 수직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다양한 수평적 정보들을 수직화하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절대로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깨닫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혼란만 더하지요. 그 많은 정보를 수직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기 인식을 심화시키면서 재구성 능력을 높여가는 게 바로 공부이고 학습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속도와 효율성, 경쟁과 성과주의 등 물량적, 비인간적 가치에 압도되면서 선생이 추구하는 공동체적 가치와 협업적 인간관계가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이런 공세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자본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자기증식인데, 이게 거듭되다 보니까 자본주의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 모두 자본의 논리에 갇혀버리게 되지요. 집 한 채 소유하면서 잘 살고 있으면서도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도저히 만족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뭐가 진정한 삶의 가치인지, 어떤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람인지, 헷갈려서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현실을 보면 우리를 압도하는 이런 비인간적 공세가 너무 무지막지한 나머지 이를 극복해 보려는 여러 노력이나 움직임들이 너무 나약하고 실효성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런 비인간적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는 게 교육이고, 그게 학벌사회, 서열사회를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학습에 참여하게 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좋은 실천일 수 있습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지배담론, 기득권세력에 대항하고 저항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음모의 작은 숲’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붓글씨로 ‘더불어 숲’이라고 쓰고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더불어 숲이 되어 지켜주세요’라고 강조하고 다녔지요. 여기서 숲은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서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옛날에 며느리들이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잖아요? 그러면서 가슴에 쌓인 것들을 풀어내고 카타르시스를 하는 건데, 그런 공간, 작은 숲을 생활 속에 계속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계신 평생학습의 공간들은 아주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숲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숲들이 서로 만나면 상당히 중요한 사회적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평생학습의 작은 숲들이 만나서 새로운 역량으로 증폭되는 곳이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