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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소통부재의 시대,‘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다

by 밥이야기 2009.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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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독일여성(탱크청소장면) 야스민처럼 보이지 않게 사회의 막히고, 소외된 곳을
 뚫어주고, 껴 안아주는 정치가 필요하다.






영화 바그다드카페

바그다드(Bagdad)는 이라크의 수도다. 바그다드카페는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 영화 바그다드카페는 페미니즘영화로 분류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민초들의 이야기다. 처음 바그다다카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이라크를 떠올렸다. 그렇지만 영화의 장소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주변 황량한 사막 언저리에 자리 잡은 곳. 바그다드카페는 길거리 영화다.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꿈을 살려 나간다.
주유소와 모텔,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흑인여성 브렌다, 화려한 할리우드 엑스트라역할을 청산하고 캠핑카에서 하루하루 추억을 되살려 그려내는 화가. 미국에 여행을 온 독일여성 야스민은 라스베이거스 근처 모하비 사막을 걷다가 바그다드 카페에서 여정을 푼다.

바그다드 카페는 망하기 직전, 아니 이미 사막의 일부가 된 현실이 잃어버린 카페다. 한 독일여성이 모텔에서 여행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바그다드 카페는 변화기 시작한다. 야스민은 경계인 이었지만, 바그다드카페의 묵은 먼지를 청소하고, 먼 이방자에 대한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며 바그다드카페를 생기 넘치는 장소로 변모시킨다. 이 영화의 핵심의 소통이다. 소통의 벽을 헐어내는 매개로 마술쇼가 펼쳐진다. 날마다 바그다드 카페에서 벌어지는 마술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다시 찾아든다.




한국의 바그다드카페

한국의 바그다드카페는 어디에 있을까? 영화 바그다드카페를 보면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다. 영화와 소설의 연관성은 크지 않다. 다만 일상의 기억에서 멀어진 민초들의 삶은 같다. 용산 철거민 참사가 그렇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으로 삶의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 개발과 성장이라는 명목아래 중심에서 밀려난 변방의 사람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그다드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미디어법도 민주당의 길거리 투쟁도 눈에 보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이른바 20대 80의 구조 속의 80을 차지하고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지방을 내려가 보자, 뻥 뻥 뚫린 도로 주변에 세월의 먼지에 둘러싸인 채 놓인 수많은 바그다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개발은 도로만 잘되어있지, 그 주변부 삶은 애처롭다. 중심의 문화와 변방의 문화. 이미 식민지로 전락한 지방의 바그다드카페는 지금도 영화 바그다드카페에 등장한 독일여성 야스민과 마술쇼를 기대하고 있다.



바그다드카페는 소통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 설 때마다, 몇 공화국, 민주정부,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붙인다. 한 정부의 닉네임이다. 이명박 정부는 불통정부다. 소통이 없는 정부다. 소통이 없이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개발과 법치주의는 수많은 바그다드카페를 만들어 낸다. 바그다드카페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삶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 다른 하나는 불신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면서 만들어 낸 카페를 의미한다. 없는 사람 마음 없는 사람이 더 잘 안다고. 미디어법 날치기 쇼의 핵심은 불통이다. 신뢰의 벽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대화와 갈등조정은 쉽지 않다. 바그다드카페사람들은 큰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영화 바그다드카페에 찾아든 야스민처럼 묵묵히 자기 일을 펼치면서 화해하고 소통하며 불통의 무너뜨리며 다가서는 자세를 원한다. 그것은 그림 잡는 재래시장이나 떡볶이집, 방문이 아니다. 천천히 일상에 스며드는 변화를 원하다. 그 전제조건은 바로 소통이다.




 
이명박 정부의 마술쇼

마술쇼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속임을 알고 속임을 즐기는 마술쇼. 마술쇼는 쇼다. 야스민이 바그다드카페를 부활시켜낸 마술쇼는 통합과 소통의 미학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마술쇼는 쇼같지 쇼이기 때문에 문제다. 뻔히 보이는 쇼를 쇼가 아니 다고 하는 거짓 쇼는 금방 들통이 난다. 국민들도 즐겁지 않다. 차라리 쇼라고 인정을 하는 것이 부담 없다. 왜 한 나라의 대통령을 사람들이 멸시하고 조롱하고 있는 걸까.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아야지 소통의 길은 열린다.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깨우쳐야지 된다. 그렇지 않고 계속 마술쇼를 한다면, 사람들은 마술을 사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민주당은 길거리 투쟁을 나섰다. 이들을 반대세력 내지는 말꼬리 잡는 투쟁세력을 매도만 하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집권세력의 반성 없이는 이명박 정권 내내 광장시위는 온,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민주당도 길거리정치에서 바그다드카페를 보아야 한다.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생생하게 현장 속에서 보고 들어야 한다. 국민들은 성공시대를 원하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가 없는, 사람 사는 세상 바그다드카페를 원한다.




▲현실의 삶 속에는 바그다드카페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치는 바그다그카페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쇼를 원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에게 휴가 때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니 온라인에 무수히 만들어지고 있는 바그다드카페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