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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영화

청룡영화제 ‘이끼’들이 양지로 나온 이유?

by 밥이야기 2010.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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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을 먹으면서 잠시 방송에서 중계되고 있는 청룡영화제를 보았다. 영화 ‘이끼’에서 이끼(조연) 같은 익살맞고 소름 돋아나는 연기력을 펼친 두 배우가 남우주연상(정재영)과 남우조연상(유해진)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제대로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상(강우석)까지 받았으니 이끼가 이끼수준을 넘은 셈. 영화 ‘이끼’는 윤태호 만화 잔혹스릴러 ‘이끼’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만화의 캐릭터가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끼는 잎과 줄기의 구별이 분명하지 못하다. 이끼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주연 같은 조연, 조연 같은 주연들이 연기력을 뽐냈다. 어쩌면 다들 조연상감이다. 조연상을 한, 두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면 연기자 모두에게 공동 수상을 주고 싶을 정도다.

 

 영화 ‘이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끼 같은 존재들이다. 인간 군상들은 어둡고 침침한 과거를 갖고 있다. 이끼를 단순 잔혹스릴러로 보고 싶지 않은 이유다. 이끼에 담긴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부조리세계를 과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끼는 스릴러를 넘은 정치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로 분류하고 싶다. 이끼에 등장하는 마을은 ‘작은 성’이다. 영주가 마을을 빈틈없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몰래 하는 기침 소리도 들릴 것 같은 느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한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18세기 말 유럽을 여행하면서, 현대 감옥의 모델이 된 ‘파놉티콘(Panopticon)’마저 연상된다. 파놉티콘은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파놉티콘은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고자 했던 기획이 감옥으로 확장된 개념이자 디자인이다. 일망감시장치. 근대사회의 정치를 규율과 훈련권력으로 해명했던 프랑스 철학자 미셀푸코의 대표작 ‘감시와 처벌’도 파놉티콘의 재해석인 셈이다. 푸코는 파놉티콘을 통해,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것이며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으로 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집결된 권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감시하고 통제하는 파놉티콘의 개념은 감옥, 군대, 조직, 학교, 병원 등 여러 시설에 녹아들어가 있다. 영화 이끼의 마을공동체는 한국판 파놉티콘인 셈. 이장이 마을 사람을 감시하고 지배하는 세계.

 
영화 이끼는 과거의 이끼를 지우고 자신들 만의 이상 세계를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결국 크기만 다를 뿐 사회 권력세계와 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하루키의 <1Q84>가 떠오른다. 소설에서는 사회주의 이상을 위해 공동체를 만드는 집단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집단은 곧 종교화된다. 폐쇄된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건과 등장인물은 영화 이끼의 소재와 교차된다.

 

청룡영화제에서 ‘이끼’로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을 받은 두 배우와 아울러 이끼공동체를 이루었던 조연 배우들에게도 늦게나마 박수를 보낸다. 영화 전체의 평가는 여전히 관객의 몫이지만. 이끼 속에 담긴 사회적 담론과 연기만큼은 어느 정도 평가해 주고 싶다. 청룡영화제를 통해 습한 그늘에서 나온 이끼. 다시 한 번 볼까?

 

 

중앙감시탑에서는 수형자를 완벽히 볼 수 있지만, 감시탑의 인물은 수형자가 볼 수 없다.
이렇게 얼굴 없는 감시의 눈길은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들어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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