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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몽둥이는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다

by 밥이야기 201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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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몽둥이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옛날 군대에서는 몽둥이는 얼차려 받을 때 필수 과목(도구). 군대의 서열, 계급 사회입니다. 질서 와 상하복종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몽둥이는 휘둘러졌습니다. 삽자루, 곡괭이 자루에서부터, 심지어 총이 몽둥이로 대체되기도 했으니까요. 맞으면서, 계급과 이름을 복창하면서 우렁차게 맞아 주어야 했습니다. 취침점호가 끝나고 누워있을 때 누구가의 손이 어깨에 닿으면 그날은 여지없이 한 밤 중에 허벅지와 가슴에 멍이 들었습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몽둥이 체벌이 있었다고 합니다.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지요. 말은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서약서까지 받아놓고 마음껏 때렸다니 할 말 없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른 교사는 체벌의 이름을 새롭게 썼습니다. 왜 체벌 금지가 필요합니까? 이제 이 물음에 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르는 훈육이 체벌로 바뀌고, 체벌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야만입니다. 자고로 폭력을 당한 자는 대부분 폭력을 쉽게 행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습관처럼 폭력을 휘두릅니다. 길들여진다는 것. 잘못 길들여지며 사람의 인성은 바뀔 수밖에 없지요.

 

체벌이 없으면, 학생들 통제가 어렵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왜 선생 직을 선택하셨나요. 대학교에 폭력전공이 있습니까?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입니다. 아무리 지식을 습득해도 인간됨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지요. 벌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벌도 최소한의 가인드라인이 있어야지요. 그 선을 넘으면 폭력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아버지 세대나 40대, 50대의 사람들 대부분의 평범씨들은 군대와 학교에서 예사롭게 맞고 자랐습니다. 맞고 컸다고, 몽둥이를 대물림해야 하나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폭력적 행위는 사실 개인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바탕에는 잘 못 심어진 교육과 사회체계의 위계질서 확립을 위한 폭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말이 있습니다. 폭력은 전쟁광을 낳고, 흉악범을 낳습니다. 선천적으로 폭력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교육을 통해 폭력적 성향을 막는 것이 지상과제 아닌가요. 자신의 아들이 술 먹고 행패부렸는데, 자신의 아들을 위해 술집에 가서 빰을 때리고 욕을 하고 협박을 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자기 자신은 애지중지해 하면서 남에게는 폭력적 언사를 일상다반사처럼 하는 사람들은 성공했어도 성공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공정사회를 외친들 소용없습니다. 안철수씨의 모친은 아들에게 존칭을 쓰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로 존경하는 마음. 상하가 아니라 평등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접하는 사회. 체벌금지냐 유지냐 이전에 인간 교육이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외국의 한 갑부의 아들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세계의 빈곤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요.

 

이번 몽둥이 폭력을 행사한 선생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들, 딸들이 폭력서약을 받고 엉덩이와 종아리가 피 터지도록 맞았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이냐고? 잘 맞았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건가요? 체벌논란을 떠나 몽둥이 폭력은 폭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몽둥이 폭력이 일어난 학교는 몇 년간 모든 지원과 혜택을 금해야 합니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체벌 금지를 떠나 폭력이 자행된 학교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됩니다. 군사문화와 속도주의, 하면된다와 때리면 된다의 잔재를 걷어 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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