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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김대중 자서전에는 ‘민주’가 몇 번 나올까?

by 밥이야기 201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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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월 18일)은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입니다. 어제는 서울광장에서 고인의 삶을 기리는 추모문화제가 열렸습니다. 고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민주주의’입니다. 고인의 자서전을 읽다가, 문득 자서전에는 ‘민주’라는 말이 몇 번 나올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민주(민주주의, 민주화 등)라는 말에 밑줄을 긋고 번호를 매기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민주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오기도 했거니와,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 번 더 읽어 보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자서전은 고인의 일대기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발자취이자, 고인의 눈으로 본 해방전후사이기도  합니다. 고인을 평가할 때 민주라는 말을 뗄 수가 없지요. 민주라는 단어를 세는 것보다 헤아려 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을 들라면 ‘민주주의 후퇴’입니다. 어제는 MBC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이 김재철 사장과 경영진의 방송보류 방침으로 불방 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국토해양부가 방송 가처분신청을 내자, 법원이 이유 없다고 각하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이 중단 된 것이지요.

 
나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방송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국민이요, 시청자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아직 권력이 주인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완성이 아니라 끝없는 지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끝없이 되찾아 발전시키는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고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이명박 정부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사람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논문이 있습니다.

 
1994년 싱가포르 리콴유 전 수상이 아시아에는 민주주의적 철학과 전통이 없다면 이를 아시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고 말하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정치 학술지 ‘포린 어페스’에 ‘문화가 운명인가?’라는 글을 통해 반박합니다. 논문 중에서 김대중 자서전에 부분 발췌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록크가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웠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록크의 이론에 의하면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들과의 계약에 의거하여 지도자들이 통치권의 위임을 받는데, 통치를 잘하지 못했을 경우 이 통치권이 철회될 수 있다.

 

그러나 록크의 이론보다 거의 2천년 앞서 중국의 철학자 맹자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설파한 바 있다. 맹자가 주장하는 왕도정치의 이론에 의하면 왕은 하늘의 아들로서 좋은 정치를 베풀어야한다는 임무를 하늘로부터 위임받았다. 왕이 악정을 하면 국민은 하늘의 이름으로 봉기하여 왕을 권좌에서 몰아낼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맹자는 심지어 옳지 않은 왕을 죽이는 것까지도 인정하였다. 폭군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물었을 때 맹자는 왕이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잃게 되면 백성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으며, 백성이 첫째이고 국가(사직)가 둘째이고, 그다음이 왕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민본정치 철학에 의하면 "민심이 천심이다"고 했으며 "백성을 하늘로 여겨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의 토착신앙인 동학은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이 곧 하늘이다"고 했으며,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동학정신은 1894년에 봉건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착취에 대항하여 거의 50만이나 되는 농민들이 봉기를 하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 같이 유교와 동학의 가르침보다 민주주의에 더욱 더 근본적인 사상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시아에도 서구에 못지않게 심오한 민주주의의 철학적 전통이 있음이 확실하다.


 

 

지난 65주년 광복절 때 광화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나란히 같이 걸어가는 전두환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 가눌길 없었습니다. 한국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두 전직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일을 아무리 잘해도, 국민 위에 군림해서 인권이나 자유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저버린다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내용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하는데, 민주주의 시계는 정지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그 길이 고인이 걸어온 길을 기리는 일이면, 평가를 넘어 더 넓고 깊은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심어 넣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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