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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경술국치일 조기게양,소녀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by 밥이야기 2016.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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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날일까? 돌이켜보자. 1910년 5월 데라우치가 3대 통감에 취임하면서 한일합병은 빠르게 추진되었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통보했다. 8월 18일 한국정부 각의에서 조약안이 통과되었고,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되었다. 일제는 한국민의 저항을 우려하여 29일이 되어서야 조인 사실을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 건국 519년 만에 합병의 형식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아시아경제 따르면, 경술국치일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만난 '소녀상 지킴이' 윤재민(20)씨의 말이다. 위안부 문제 또한 일제에 주권을 잃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경술국치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수많은 아픔과 갈등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경술국치는 106년 전이던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날이다. 이날 일제는 강제로 체결한 한일합병조약을 공포했다. 경술국치는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치욕’이란 의미다. 경술국치 106주년을 하루 앞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은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문 채 맞은편 옛 주한일본대사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는 윤씨처럼 243일째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소녀상 지킴이들은 지난해 12월28일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소녀상 이전 반대를 요구하며 노숙농성 중이다. 윤씨는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사실에 맞서 싸우는 게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라며 “위안부 문제는 피해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문제다. 민족의 아픔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녀상 지킴이 황지영(22)씨는 “이곳을 지키면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며 “그분들이 지금까지 잘 싸워오셨는데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 지금은 40명만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소녀상의 맨발은 여전히 뒤꿈치가 들려 있다. 이는 1945년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왔지만 늘 죄지은 마음으로 숨죽여 살아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소녀상 지킴이 황씨는 기자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빗대 "과거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언제쯤 과거가 제대로 마무리 돼 죄없는 소녀상의 맨발이 온전하게 우리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될까. 이날 경술국치 106주년을 맞는 일본 대사관 앞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폭염의 잔상으로 후덥지근하기만 했다. 한편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금천구(구청장 차성수)가 일제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상실한 날인 8월29일 ‘경술국치일’에 태극기를 조기로 게양한다. 금천구 관계자는 “1910년 8월 29일이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일’임을 일깨우고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나라와 주권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기게양은 각 가정과 민간기업·단체 등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구청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은 24시까지 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