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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노벨평화상 보다 값진 김대중 수상연설문

by 밥이야기 2009.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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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참 흔하고 쉬운 말인 것 같지만 오늘 따라 이 말이 새롭게 다가섭니다. 사람 이름도 이름 나름이겠지요. 사람들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죽은 뒤에 더 조명 하고, 재해석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만큼 현실 세계는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이성을 가장하지만 톱니바퀴의 일상에 걸려 돌아다 볼 틈이 없는 거지요. 죽음이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더 이성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슬픔이 끝나면, 아니 너무 슬퍼하다 보면, 갑자기 사물들이 다시 보이듯, 생각의 지평도 넓어 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생전에 못해드렸거나 귀담아 듣지 않은 이야기들이 꿈틀 꿈틀 가슴 속을 헤집고 나오니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아있을 때와 서거이후 큰 이견 없이 존경을 받는 흔치 않는 인물입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사람들과 이유 없이 미워했던 사람들은 제외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김대중 서거 이후 그럴듯한 말과 행동으로 죽은 자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이지요.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자들이 때로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기 때문입니다. 죽어 산다는 말은 정신과 지향은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이름을 넘어 사상을 남기고 가르침을 던져 주는 사람이 바로 인동초 김대중입니다.





▲노벨상 홈페이지. 김대중 대통령. 출생연도와 서거연도(2009)가 벌써 기록되어 있다.





▲스웨덴 주요 일간지 중에 하나인 나건스 나이터 홈페이지에는 실시간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오늘 스웨덴 노벨상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벌써 서거 년도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문과 군나르 베르게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 위원장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수상 배경이나, 햇볕정책(통일관)에 대한 글도 글이지만, 더 빛나고 값진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왜 그때(2000년)는 이런 글을 보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내용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는 기뻐한 나머지, 미처 보지 못했거나 대충 넘어갔던 것이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알려지다시피 서예에 조예가 깊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높게 평가를 주고 싶기도 합니다. 힘이 넘쳐 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예작품에는 ‘경천애인’과 ‘사인여천’이라는 글이 많이 쓰여 졌습니다. 사인여천. 한울님을 공경하듯이 사람도 그와 똑같이 공경하고 존경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학에 뿌리를 둔 천도교의 핵심 사상이자 윤리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결국 사람에게 화를 당했지만, 그 화를 사랑으로 베푼 인물입니다. 사람을 핵심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 세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과 그 뜻이 닿아 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도 사인여천의 정신이 언급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 '사천여인'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에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 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사람이 즉 하늘이다.' '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천 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천 5백 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 보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천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뛰어 넘는 발언했습니다. 주체적인 사상관이지요. 이런 정신이 햇볕정책에 일관되게 녹아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죽어서 이름만 남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우고 이어가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지향이 이제 곳곳에서 빛을 발휘 살아날 것입니다.

군나르 베르게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을 축하하는 연설에서 노르웨이 남서부의 항구도시 스타번게르의 작가 군나르 롤드크밤가 쓴 시 "마지막 한 방울"을 소개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
하나는 첫 방울이고
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
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네
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네
만사를 뛰어넘어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
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그리고 다음과 같이 첫 물방울을  대해 언급하면서 연설을 끝맺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오랫동안 극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그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거나 엄청난 정치적 탄압에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북한 지도자들은 남북한 화해를 향해 첫발을 내딛게 한 역할을 인정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 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앞으로 살아 갈 사람들이 두 번째 물방울이 되어 통일 세상을 이루어 내어야 합니다.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문 전문>>전문 읽기(아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