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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5.18, 첫 희생자는 누구였을까?

by 밥이야기 2011.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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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8 민주화운동(민중항쟁)' 31주년 기념일이다. 언제나 엊그제 같은데 하반세기를 넘겼다. 아직 밖은 깜깜하다. 왜 나는 이른 새벽에 눈을 떴을까. 5.18이라서. 아니다. 할 일 없어서다. 갓 구워낸 신문을 펼쳐든다. 그래 5.18이다. 작년 5.18 30주년 해프닝이 떠올랐다. 기념식에서 '님(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했다. 경기 민요인 '방아타령'이 울려퍼졌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서울시에서 개최된 5.18 추모 행사장에 오색찬란한 화환을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도 마찬가지. 3연석 불참이다. 5.18 기피증(공포증)에 걸렸을까? 왜 5.18에만 약속이 많이 잡혔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마다 5.18에 대한 기억과 생각이 있을 것 같다. 요즘 신세대들에게 5.18은 어떻게 다가올까? 아무 생각이 없을까? 탓할 수만은 없다. 5.18을 모른다면 어른 탓이다. 어떤 보수단체는 아직 5.18을 북한 소행이라 주장(5.18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반대)하고 있으니 할 말 없다. 5.18은 밑물이자 썰물이다. 한꺼번에 포말을 일으키며 확 다가섰다가, 눈 뜨니 포말로 사라진다. 하지만 5.18 때 사랑하는 부모,형제,친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을 때리는 포말로 밀려들며 끝없이 때릴 것 같다. 해가 뜨기 전 어둠이 가장 깊고 짙다. 어둠이 걷히기 전, 5.18 관련 자료를 읽어본다. 표현할 수 없는 쓰라림이 얼굴과 가슴을 붉게 만든다.



5.18 주범이라는 불리는 전두환은 통장 잔고는 29만원인데, 경호비용만 8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노태우도 마찬가지다. 5.18 유가족에게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질까. 통곡할 일이다. 어떡하리. 역사 공부는 중요하지만, 오늘 만큼은 역사책을 버리고 싶다. 5.18 묘역의 희생자 사진을 본다. 한 사진 작가(현린)가 담은 흑백 사진을 본다. 5.18 광주의 첫 희생자는 누구였을까. 묘역번호 1-01. 김경철. 나는 묘역에서 김경철을 보았지만, 잊고 있었다. 산자가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산자는 쉽게 잊고 지낸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 만큼은 그 때 숨진 님을 위해 묵념을 올리자. 형식이 뭐 중요하리. 





김경철(金敬喆) 

묘역번호: 1-01 
생 애: 1956.08.15 ~ 1980.05.19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타박사 
사망 장소: 서동 구 전남양조장 공터 
기 타: 양화공
유 족: 임근단(모)
 

광주의 첫 희생자는 시위대도 학생도 아니었다. 장애인 김경철 씨였다. 들을 수 없고 말도 잘 하지 못하는 그의 죽음은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려왔다는 계엄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경철 씨는 딸 혜정이의 백일잔치를 치른 며칠 뒤인 5월 18일에 가족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집에 왔던 처남이 영암에 간다기에 데려다 주러 나갔다가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금남로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공수부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무조건 달려들어 몽둥이를 내리쳤다. 친구들은 도망쳤지만, 경철 씨는 들리지 않는 탓에 낌새를 몰랐고 공수부대원들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말할 수 없으니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학생도 아니고 데모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들을 수 없으니 그들이 요구하는 지시를 따를 수도 없었다. 가지고 다니던 신분증을 보여주며 자신은 청각장애인이라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매뿐이었다. 그는 나동그라지면서도 빌었다. 그들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애원하며 맞았다. 대답하지 않는다고 때리고, 벙어리 흉내를 내며 장난한다고 후려치고, 번호를 붙이지 않는다고 군홧발로 짓이겼다...

뒤에 광주지방검찰청과 군 당국이 합동으로 작성한 김경철 씨 사망자 검시서에는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 놔안상 검부열사, 우측 상지전박부 타박상, 좌견갑부 관절부 타박상, 긴경골부․둔부 및 대퇴부 타박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랬다. 뒤통수가 깨지고, 눈이 터지고, 팔과 어깨가 부서졌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졌다...

경철 씨의 딸 혜정이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랐다. 어린 손녀가 엄마를 찾으며 보챌 때는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할머니에게 손녀는 아픔 그 자체였다. 어린 손녀를 끌어안고 많이도 울었다. 남편이 떠났을 때도 아들 보낸 서러움만큼 크지는 않았다...

“경철아, 미안하구나. 에미가 못난 탓에 네 귀를 어둡게 했는디, 그것 때문에 네가 죽었구나. 미안하구나. 그 죄값 하느라 이 에미가 너 없이 외롭게 수십 년을 살았단다. 그래도 네 죽음 헛되지 않게 이 에미가 열심히 살았다. 글고 우리 혜정이 너를 보듯이 키움서 살았다. 경철아 이제는 에미를 용서해다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경철아 미안하다.첫 희생자는 상징이다. 첫 죽음이든 마지막 죽음이든 다 고귀하고 슬픈 죽음이다. 5.18 때 숨진 넋들아 미안하다. 나는 80년대 초 잠시 전남대를 다녔다. 학교를 떠났지만, 5.18은 항상 무거운 짐에 되어 마음에 남아있다. 5.18은 슬픔의 원동력이었고, 좌절의 늪이었다. 작년 5.18 때 방아타령에 맞서 많은 누리꾼들과 트위터 사용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 을 떼창했다. 오늘은 또 어떤 타령이 나올까.



<5.18 때 숨진 넋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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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현린(http://www.raysoda.com/hyunreen)





*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RDp7D95uZ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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