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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서태지,이지아, '타인의 고통'이란?

by 밥이야기 201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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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소더버그의 이름을 널린 알린 영화 <섹스,거짓말,비디오테이프>. 1989년에 상영된 이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섹스라는 말만 제목에 있지, 포르노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19세금 영화다.일부 포털사이트에서는 성인 인증이 있어야 영화 정보를 볼 수 있다. 남녀 관계를 통해 성적으로 억압된 현대인들의 상처와 치유과정을 그린 작품이, 청소년 관람불가라니? 19금 영화보다 언론과 일부 상업사이트의 여성노출광고가 더 노골적이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연예계 소식 하나가 리히터 9를 넘기며 전 분야를 덮치던이, 계속 여진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인공 여진이다.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thers)'은 탁월한 비평가 수전 손택이 쓴 책 제목이다. 전쟁 사진을 다양한 시각에서 다룬 비평집이다. 수전이 말한 타인의 고통은 사진을 카메라에 담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의 고통. "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타인이 겪었던 것 같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  물론 서태지,이지아 과거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전쟁처럼 폭력이나 잔혹한 이미지를 보여 주지 않는다. 피를 보아야지 폭력적일까? 간접적 폭력(욕설, 비하 등)이 어쩌면 더 잔인할 수 있다.



이지아의 위자료 청구(재산 분할 포함) 소송으로, 지난 비밀 과거사가 송두리체 까발려지고 있는 서태지와 이지아. 서태지와 이지아를 몰랐던 대중들까지 빨아들일 기세다. 서태지가 문화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 또한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용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태지를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아들, 딸들이 서태지를 외치니 반복학습효과로 기억될 뿐. 서태지와 이지아도 연예인 이전에 개인이다. 당신의 아들, 딸들의 사생활이 검증없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고 손가락질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 보를레르는 자신의 일기장에 글을 남겼다. " 매일, 매달 혹은 매년 신문지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가장 끔짝하기 이를 데 업슨 소식이 실리지 않을 때가 없다... 처음 줄부터 끝줄까지, 모든 신문들은 공포들에 질릴 만한 소식투성이다. 군주들, 국가들, 사적 개인들이 저지른 온갖 전쟁, 범죄, 절도, 호색, 고문, 사악한 행위, 온
세상에 판치는 잔악 행위 등등. 문명화된 인간은 매일 이 메스꺼운 전채로 아침식사의 식욕을 돋운다"



21세기다. 하지만 보를레르가 살았던 시대에 비해 정보 생산과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생산된 기사 한 줄이 일파만파 번져난다. 파급력도 대단하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서태지, 이지아 과거사 이야기는 곧 묻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목마른 사람들은 객관적이란 표현을 쓰면서 주관적 이야기를 그치지 않는다. 진정 타인의 고통 소식은 외면한다.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인터텟. 서태지와 이지아는 상품이 아니다.
상품일수도 있다.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상품의 속사정을 공개하라고? 서태지와 이지아는 타인이다. 타인의 고통을
상품화하는 여론을 먼저 질타하자.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타인의 고통 기사감에 경멸을 보내자. 두 사람이 자의든 타의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사생활을 상품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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