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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

이지아 이혼사유와 서태지 신비주의

by 밥이야기 201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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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알아야>로 혜성같이 대중앞에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이 처음으로 무대에 선 동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서태지(본명: 정현철)는 17살 때 그룹 시나위(신대철, 김종서 등) 멤버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이름까지 거머쥔 서태지. 4집 음반 발표를 끝으로 1996년 그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미국으로 떠났다. 서태지는 대중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자유였다. 그가 남긴 노래는 숱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언급되고, 인용되었다. 서태지를 빼놓고 대중문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팥없는 찐빵이었다. d이후 서태지는 아이돌 문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대중음악 마케팅 분야(연예매니지먼트, 기획 등)에 영향을 미쳤다. 가수도 개인을 넘어 기업화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주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반항'과 '저항'의 상징으로 인용, 활용되었다.



 하지만 서태지는 2년 후 컴백했다. 2년마다 신비주의 마케팅을 선보였다. 새로운 음반은 공개될 때까지 007도 모를 '특 비밀'이었다.서태지의 신비주의가 시작되었다. 서태지의 신비주의는 궁금증 자극제였다. 예술 장르가 아니라, 서태지만의 아이콘만들기였다. 그의 활동은 철저하게 배일에 가렸다. 어떤 노래를 들고 나올지 대중은 예측하지 못했다. 어제 서태지와 이지아의 결혼, 이혼, 소송 설이 제기되자 많은 언론은 서태지에 주목했다. 이지아 소속사(키이스트)는 하루를 넘기지 않고 공식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소문과 진실사이, 확대 재생산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보도자료를 통해 이지아는 간접적으로 지난 세월을 고백했다. 1997년 결혼했고, 2006년 이혼 신청서를 제출하고, 2009년에 이르러 이혼 효력이 발생했다고.




이지아는 사랑했지만 일반인에 비해 평범하지 않은 상대방의 생활방식, 성격차이 때문에 이혼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고 말했다. 이지아 입장에서는 지금은 소송이 중요할 것이다. 지난 상처는 어는 정도 새살이 돋아 과거를 덮었을 것이다. 2009년에 이혼했다면 위자료 소송과 재산 분할소송은 유효하다. 이혼 후 3년까지, 위자료 소송은 법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대중의 환호와 찬사를 뒤로하고 미국을 떠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해체되었지만, 서태지는 신비주의 이름으로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서태지의 신비주의를 신비를 등에 업은 상업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혼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결혼과 이혼은 서태지의 신비주의 음악처럼(발표)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다. 14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고 서태지와 이지아는 '난 알았지만'. 두 사람의 가족들은 알았지만, 대중은 몰랐다. 두 사람의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은 신비주의에 가릴 수 없다. 두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다. 팬들 입장에서는 야속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지만, 예능인 이전에 그들도 사람이다. 다만 결혼도 신비주의, 서태지의 활동에 기반한 수단이자, 개인을 위한 가림막이었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누가 더 상처를 받았을까? 아무튼 두 사람은 젊다. 살아야 할 날들과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신비주의 속에 가린 상처를 떨쳐내길 바랄 뿐이다. 깜박 스캔들도 아니고, 불륜도 아닌, 비밀(사생활)을 누가 비판하랴.... 두 사람에게 돌(여론)을 던지지 말자. 아무튼 서태지가 이룬, 만들어낸 '한국 대중 음악사'에 서태지의 신비주의는 결혼, 이혼 비밀주의로 바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그나저나, 신비주의 노총각들 오해 많이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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