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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4.19혁명, 그때 그시절 초등학생들은?

by 밥이야기 201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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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그 어느 때보다 51년 전, 그 때 그 시절 사진을 보노라니 눈물 난다. 새벽 3시부터 4.19 자료를 찾고 읽다가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가슴이 사뭇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에서 한 장의 사진. 초등학생들의 행진. 4.19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독재자(이승만)를 타도한 쾌거의 날인가. 신화인가? 미완의 혁명인가? 4.19가 끝나고 많은 시인들은 노래했다. 김수영은 '기도'와 '푸른 하늘을'. 금강의 시인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라고. 시위에 참여했던 신동문은 < '아' 신화같이 다비데근' >을 남겼다. 청록파 박두진은 '우리들은 깃발을 내리것이 아니다'라고 깃발을 들었다.



               * 이미지 출처: 한나라당 공식누리집



박희태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대표일 때 단생단사를 이야기했다. 이승만이 박승만(박희태)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역사의식 제로인 박희태와 한나라당. 박희태가 국회의장인 현실이다. 이승만은 4.19 혁명이 일어난 일주일 후 하야선언(4.26)을 했고, 한달 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승만은 분단고착, 친일 청산이 아니라 껴앉기, 정경유착 등 한국 현대사의 고질적 병폐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그런데 요즘의 현실은 어떤가. 그렇기에 오늘 4.19혁명 기념일이 남다른 이유다.





헌법 전문을 읽어본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오늘의 현실은 거꾸로다. 누구를 위한 단생단사인가.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申東曄, 1930 - 1969)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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