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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

한국의 마돈나, 김완선은 삐에로였나?

by 밥이야기 2011.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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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밤, MBC 황금어장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 지난 속내를 털어낸 김완선. 삐에로. 김완선은 노래하는 '어릿 광대' 였을까? 김완선이 부른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첫 가사가 떠올랐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김완선은 1986년 1집 <오늘밤>으로 부르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한국 댄스 뮤직의 마돈나로 불렸다. 미모와 표정 없는 큰 눈동자는 사람들에게 노래하는 인형으로 다가섰다. 춤만 잘추지, 노래는 별로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춤만 마돈나. 하지만 김완선이 이루어낸 무대는 한국 가요사에서 평가 받을만 하다.



김완선은 가수 인순이의 백 댄서로 데뷔했다. 김완선을 가수로 키운 인물은 그녀의 이모였던 고 한백희(그당시 인순이의 매니저). 13년 동안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한 김완선. 그녀는 한백희의 삐에로였다. 홍콩(대만) 데뷔를 위한, 은퇴선언도 이모가 꾸민 자작극이었지만, 김완선은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했었다. 마치 영원히 무대를 떠날듯이. 요즘 세시봉을 필두로 현대판 '가요무대'가 인기를 끌고 있다. 왕년의 가요스타들이 하나, 둘 부활을 꿈꾸며 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아이돌가수가 대세를 이룬 가요판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이른바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기에 무릎팍에 출연한 김완선이 반가웠다. 팬은 아니었지만, 한 때 방송에 수놓았던 김완선의 노래와 춤을 잊겠는가.김완선은 80,90년대의 아이돌이었다. 김완선 5집 <피에로는 우리를 보고 울고있지는>는 100만 장 이상 팔렸다. 2005년 9집 발매를 끝으로 그녀는 점점 시나브로 대중들에게 잊혀졌다. 김완선은 듣는 대중음악에서 보는 대중음악을 연 '섹시 아이콘'이었다. 가창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무색하게, 인기를 끌었다. 대만(동남 아시아권)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어쩌면 한류의 원조격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다. 지금의 아이돌처럼. 김완선. 표정없는 그녀의 눈빛처럼, 말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녀를 키운 매니저였자, 이모였던 한백희. 김완선은 13년 동안 돈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없었다. 한백희가 병원비가 없다고 김완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진작 나에게 돈을 좀 주지(김완선)" 그리고 한백희는 김완선과의 앙금을 풀지 못하고 떠났다.



아이돌 가수의 노예계약이 번번히 화제에 오른다. 김완선도 노예계약은 아니었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노래하는 삐에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김완선은 여러 측면에서 한국 대중가요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만 하다. 긍정과 부정적 요소를 함께 지닌 김완선. 그녀의 활동은 추후 댄스뮤직가수의 출연에 많은 자극을 주었고, 직간접적으로 아이돌 가수 전성시대를 연 마중물 역할을 했다. 다시 대중의 품으로 돌아온 김완선. 김완선은 삐에로처럼 3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거처, 가수 26년차, 그리고 오늘에 왔다. 그녀가 다시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이모가 떠난 빈자리와, 이제 찾을 길 없는 이모와의  지난 앙금을 털어내고 부활할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 김완선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모습이 너무 아름 다워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말도 못하는걸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
나는 그런 웃음 싫어
술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 아는 삐에로가 좋아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말도 못하는걸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
나는 그런 웃음 싫어
술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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