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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전세대란을 통해 본 한국판 '가본주의'란?

by 밥이야기 201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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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일) 조선일보 박정훈 기자가 쓴  칼럼 제목은 <아직 끝나지 않은 '마르크스의 저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정의를 팔아, 전세대란을 한국판 '가본주의'로 정의내린 기사다. 정의는 있지만 정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본의 '가'는 집(가)을 뜻한다. "마르크스가 환생한다면 이런 한국적 상황을 '가본(家本)주의'라고 부를 것 같다. 마르크스가 생산수단의 유·무로 계급을 나눴다면, 우리는 집이 있느냐 없느냐로 계층이 갈릴 기막힌 상황이 됐다(박정훈)"


새삼스럽다. 집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인가. 가본주의. 집이란 무엇일까? 잠자는 곳. 밥 먹는 곳. 옷 입는 곳. 사람마다 집의 정의는 다를 수 있다. 집이 없으면 떠도는 영혼인가. 노숙인들에게는 거리가 집이다. 집일까? 물론 집이 아니다.해석일뿐이다. 집은 자본이기도 하다. 먹고,자고 가정을 이루고 삶의 안식처인 집은 투기와 투자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집을 가지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는 사회 계급과 계층을 나누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집은 이중적 함의를 갖고 있다. 집은 하드웨어자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는 투기와 투자의 대상으로써 집이다. 하드웨어에 사람이 살고 가족을 꾸리고 희망을 살리면 소프트웨어가 된다. 사람에게 의식주는 중요하다. 의식주 중에 가장 큰 뼈대를 이루는 것이 주거다. 집이다. 사람은 살림을 꾸리면서 가장 먼저 갈구하는 것이 집이다. 집 장만. 집을 사기 위해 살 정도로 집은 한국인에게 중요하다. 한국인 뿐만이랴. 유목민이 아닌 이상 집은 살림의 근간이자 상징이자 은유다.


이런 집이 하드웨어로써만 존재할 때. 집을 바라보는 하드웨어적 시각이 고착될 때. 집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전세가 올랐다. 전세가 아니라 월세를 받고 싶다. 집주인은 전세금보다 월세가 좋다. 은행에 전세금 맡겨보았자 별 이익없다. 투자하기도 불안하다. 이러니 전세대란이다. 집은 많아보이는데, 집을 하드웨어로 만든 사람들이 탐욕은 그칠줄 모른다. 집은 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살아야 할 목적과 대상이 되었다. 대물림의 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이후 강남지역에 살림을 꾸린다고 했다. 정부지원비(대통령전관예우)도 상당하다. 사회지도층(여론주도층) 대부분의 집은 명예와 부의 상징이다. 이러니 누구인들 출세하며 집부터 사고 싶을 것이다. 강북좌파보다는 강남좌파가 되고 싶을 것이다. 지방좌파보다는 수도권좌파가 되고 싶을 것이다. 전세대란을 풀기 위한 단기처방은 가능하다. 하지만 장기전망은 어둡다. 집을 바라보는 문화가 비천하기 때문이다. 집의 역사는 땅의 역사이기도 하다. 땅은 살림의 땅이 아니라, 투기의 뿌리를 내렸다. 너무 깊고 넓게 뻗어 드리워져있다.


조선일보 박정훈 기자는 집으로 나뉘어진 계층 불화(편 아닌 편을 갈라 밀고 당기는 제로섬 게임)가 걱정된다고 했다. 집 없는 사람들이 짱돌을 던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저주가 아니라 가본주의 저주가 두려울 것이다. 체제의 적이 될 수 있는 집 없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와 경고다. 집 투기를 장려하고 집 문화를 하드웨어로 접근했던 진원지는 어디일까? 언론 권력이기도 하다. 한 때 기자들은 질 좋은 정보로 재빠르게 집을 장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세대란은 정부의 재탕,삼탕 정책을 펼쳐도 해결될 수 없다. 


근원적인 해법은 집을 하드웨어 개념으로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고. 집의 개념을 바꾸는 근원적 정책(투기단속, 세금 강화, 집누진세, 토지공개념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문화가 그래서 중요하다. 가본주의가 아니라 가본주의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탐욕을 접고, 집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하다. 누가 그 변화를 막고 있는가?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풀지 못하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노컷뉴스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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