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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일기

'수다의 시대', 책과 수다 떨기

by 밥이야기 2016.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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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방’은 절대 사라질 수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야기가 아니다. 책에는 인간과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책은 전설이며 역사이자 미래이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작은 책방과 출판사가 시나브로 사라졌다. 물론 대기업과 맥을 같이 하는 대형 책방(문고)과 출판사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제 책의 권력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 지면을 빌려 책과 책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소통과 공동체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마음과 생각을 넘어 대안의 길을 찾아야 한다. 아이디어를 모아 소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필자 주)

 

 
*이미지출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크빈트 부흐홀츠의 작품 (출처: https://kr.pinterest.com/source/galerie-rothweiler.de)


 
시대를 진단하는 아름다운 작가들
 
헤르만 헤세
‘고전classic, 古典’은 무엇일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크고 무거웠던 백과사전 전집이 사라졌다. 대신 온라인 백과서전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고전도 함께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고전은 죽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헤르만 헤세’가 걸어온 길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데미안』은 세계적으로 60개 이상의 언어로 약 1억 5천만 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참고). 헤세는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다. 격정의 시대, 헤세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책과 독서에 대한 수많은 격언과 잠언도 멀리 퍼져 나갔다. 그 덕분에 과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헤세 한 사람을 통해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헤세의 이름이나 작품 제목을 책방, 도서관 이름, 사업명같은 브랜드 가치처럼, 상징으로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헤세의 글은 동서양을 아우른다. 그의 글은 편협함에서 벗어났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을 보라. 헤세는 예술가이면서 자연주의자였다. 헤세는 극우주의자를 비판했던 반전주의자였다. 사실 극우와 극좌는 사라질 수 없다. 이름만 바뀔 뿐이다. 그런데 『데미안』을 비롯하여 그의 저서를 모두 숙독한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움베르토 에코와 하퍼 리
2016년 2월 19일,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났다.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도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세계 문학사에 또 하나의 흔적을 남겼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 이상 팔렸다. 이 책은 에코의 첫 소설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다. 그는 당시에 금서이던 아리스토텔레서의 『시학』 2권으로 인해 벌어진 지식과 권력, 시대정신의 충돌을 잘 그려냈다. 『장미의 이름』은 장 자크 아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철저한 고증을 기반으로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하퍼의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대공황기에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재판에 넘겨진 흑인 남성을 변호하는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의 이야기이다. 여섯 살짜리 시각으로 그 당시의 사회 문제와 인종차별의 행태를 잘 보여주며, 앞서 발표된 『파수꾼』과 더불어 미국의 근현대사를 대변한다.
 
주제 사라마구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는 2010년 6월에 타계한 작가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사라마구가 추구했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담은 상상력 넘치는 책이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시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종종 권력을 풍자하는 메타포가 된다. 사라마구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작가는 말한다. "우리의 양심은 결국 피의 색깔과 눈물의 소금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우리의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사라마구의 작품은 인간 사회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 하지만 먼 미래 인간 사회의 모습을 가늠하게 해준다. 소설 『죽음의 중지』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여신이 파업을 벌인다면. 그로인해 사람들이 늙어도 죽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지 않는 나라에 산다는 것. 진시황이 찾고자 했던 불로초도 필요 없는 나라. 이렇듯 사라마구의 작품들은 있을 수 없는 일, 일어나지 않는 일을 통해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어떤 상황에 이르는가를 조롱하고 풍자한다.
 
책을 학살하다
 
안타깝게도 20세기 말부터 동네 책방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헌 책방 역시 마찬가지다. 몇 몇 대형서점만 자리를 지켰다. 책방이란 단어는 기억 속에 갇혀버렸다. 급기야 책이 죽었다는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과연 책이 죽었을까? 책이 죽을 수 있는 존재인가?
단언컨대 책은 죽지 않는다. 책은 활자로 가득 채워진 종이 뭉치가 아니라 소통이기 때문이다. 책 자체가 매개(​mediation)이다. 책은 권력의 배신과 배반의 매체였다. 진나라 시황제, 세계 2차 대전 때의 히틀러를 생각해보라. 왜 이들은 책을 두려워했을까? 얼마나 두려우면 불 태워 버리라는 명령을 했을까? 그들이 두려워 한 것은 책이 지닌 소통의 능력 때문이 아닐까?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처럼 책은 강력한 소통 매체이다. 20세기 중반까지 많은 화가들이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영화시대가 열리면서 영화가 책을 대신 하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와 책은 다르다. 작품도 남아 있고, 영화도 남아 있고, 부와 권력도 여전하다. 그런데 유독 책만 사라진다면?
 
생각과 비판을 통제하면 대중을 지배할 수 있을까? 20세기의 학살은 다양성의 파괴와 맞물려 있다. 또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하다. 거짓은 얼마든지 진실이 될 수 있다. 정보 접근권이 차단된 사람들은 정부나 언론보도를 통해 눈이 멀어간다.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의 힘이 도태되고 있다. 생각의 과정인 부정과 의심의 능력도 약화되어 간다. 모든 것을 믿으라는 강요에 묵묵히 순종한다.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곧 국가를 해롭게 하는 것이라는 공식에 세뇌되어 간다. 그야말로 ‘눈먼 자들의 국가’이다. 눈이 멀다는 것은 욕망의 집착으로 인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 눈 뜬 상태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눈 먼 사람들로 보일 수 있다.
 
21세기에는 디지털 미디어 네트워크가 통합되고 확산된 것 같지만 사실은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다. 모든 언어가 투명유리 안에서 번식되고 쉽게 사라진다. 책과 책방, 헌 책방, 출판 산업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매체(신문, 잡지 등)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모바일, 스마트폰, 검색창,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도구와 기술을 통해 무한정 정보가 노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고갈되고 사람들은 소통의 부재로 질식하기 직전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비된 감각들을 깨울 수 있을까? 최근 출판된 『양심 경제』에서 말한 것처럼 양심경제가 제대로 전파되면 좋겠다. 또 정보 홍수시대에 네트워크공동체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책 속에 숨겨진 지름길, 양심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또한 ‘나 홀로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터넷 시대의 환상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실물 접촉, 대면 교류, 친밀 관계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건 망상이자 환상이다. 그 환상 때문에 인터넷 시대에도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움을 느끼고 무의미성의 공격에 노출된다. 방어책이 필요하다. 책 읽기와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결합한 이소이 씨의 책을 읽으며 나는 배운 것이 많다.“
-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추천사 중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사치(소비)시대가 열렸지만, 단순·소박한 생활을 통해 지난 시대가 시나브로 환경(생태)주의를 복원하려는 운동이 시작된 지 꽤 오래다. 책 한 권이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책은 소멸되지만 대중의 시각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은 사라질 수 없다. 헤세는 과학기술문명을 토대로 유럽 세계의 도덕적 부패를 고발하면서 그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스스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을 떠나서 영원한 책은 사라질 수 없다(한겨레신문 ‘인간에서 존재로, 국가에서 세계로’(2006년 1월 18일)).
이제 ‘수다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책과의 수다, 다른 사람과의 수다, 내 자신과의 수다이다. 책을 통해 길을 찾을 수 있다. IT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겐 말처럼 쉽지 않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학생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생 학생이 되어야 한다. 책은 인류의 밥이요 떡이요 빵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정치 이념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책과 도서관이 정권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지만, 국가를 은밀하게 훼손시키려는 국가의 적들에게도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책의 학살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야만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충동적인 범죄의 총합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문제해결의 도구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중
 
유창주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기획혁신 전문위원. 청년 시절 노동과 문화운동을 하며 잡지사 기자, 영화미술 기획, 기업사 집필, 편집장 등 여러 밥벌이를 전전했다. ​아름다운재단 초대 사무처장, 희망제작소 기획실장, 서울시 미디어 특보로 일했다. 저서로는 『박원순과 시민혁명』, 『소통도시』 외 다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