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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암기식 교육이 탄생시킨 정운찬과 김준규

by 밥이야기 2009.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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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는 마루타를 모르고, 김준규 검찰총장은 뇌물성 촌지와 이벤트성 뽑기 선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출신. 김준규 검찰총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국제통 검사출신. 이른바 경제계와 법조계 양대 산맥을 오른 전형적인 한국 사회 엘리트들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상식 밖이다. 교양 수준도 의심스럽다. 속빈 권력의 통나무들인가? 이들은 수직적 지식인들이다. 지성인이 아니다. 사람은 인품은 지식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머리가 좋다고 만사형통이 아니다. 사고의 힘과 깊이는 암기식 교육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떠올려본다. “인문학이 죽었다고 한다”. 이른바 사회생활과 밥벌이를 위한 기능형 판박이 주입식 교육이 판치고 있는 세상. 권력과 돈만 가지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출세지향주의가 판치고 있다.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 먹고 있다. 불행한 사회다. 지성인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마루타와 일본 731부대를 모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정치인이 아니라 서울대 총장, 스탠포드 출신의 경제학자라면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나 법조인들을 보면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문학을 알고 음악을 좋아하며, 역사에 밝다. 이들은 하나 같이 시민사회섹터에서 일을 해 본 경험들을 갖고 있다. 오바마도 마찬가지. 밑바닥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사람은 분명 '영,수,국'을 그냥 달달 외운 사람이다.

특히 경제학은 역사공부가 필수다. 세계사의 맥락을 꿰뚫어 보지 않고는 훌륭한 경제학자라 부를 수 없다. 우물안 지식인일 뿐이다. 정운찬 총리가 스승 조순과 함께 펴낸 '경제학 원론'은 한국의 경제학의 정석으로 꼽는다. 정말 원론인 것이다. 최소한 한국 근현대사를 사학자 머금가게 알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의 경제수탈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건너 뛰고 경제학의 원론을 들먹일 수 없다. 법조인은 법만 달달 외울 것이 아니라, 법이 만들어진 배경과 인권이라는 넒은 의미에서 법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균형의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 누구를 위해 법이 존재하는가? 법으로 부터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프로보노(공익을 위한 무보수 변호활동) 활동을 해야 한다. 외국에는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책을 두루 읽게한다. 보수우파를 대변하는 학자들도 칼 맑스의 '자본론'을 여러 번에 걸쳐 읽지 않는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해서 읽는 책 중에 하나가 '자본론'이다. 

 
정운찬과 김준규, 이 두 사람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을까? 궁금하다. 과연 현장을 아는 걸까?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돈이다. 깨끗하지 못했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들어나지 않았는가? 과연 이런 사람이 총리와 검찰총장의 자리에 있는 것이 맞는 걸까? 부끄러울 따름이다. 전형적인 권력지향형 인간이다. 서민들이 눈에 보이겠는가, 마음을 열고 서민 곁에 다가 설 수 있겠는가? 한없이 청렴해도 모자랄 판에 삽질을 도우고 있다.

 

두 사람에 눈에 농민들의 숨결이 들어간 쌀 한 톨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살 한 톨에는 농민의 땀과 노동이 들어 있다. 쌀 한 톨에는 폭풍을 넘긴 생명력이 담겨있다. 농민뿐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짧은 동정은 생길 수 있겠지만 그 깊이를 알지 못하면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볼 수 없다. 아픔과 희망을 볼 수 없다. 노동의 신성한 가치도 알 수 없다.

 

죽은 인문학의 사회가 만든 시대의 자화상이자 비극이다. 국민들은 괴물을 원하지 않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John Keating: 로빈 윌리암스 분) 대사가 떠오른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간에. ” 두 사람이 걸어온 길, 걸어갈 길은 권력심장부에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은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길이 되어야 한다.


 



권력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벼랑 끝에 설 수 있다. 지금이 그렇지 않은가? 권력의 책상 위에 올라 서라. 그리고 정도가 무엇인지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지 보고 느껴라. 아니면 물러나셔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아라.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입니다.

빈틈 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사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엄격히 구분짓는 잣대가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입니다.

말하는 쪽의 입장이 아니라
듣는 쪽의 귀입니다.

책 속의 깨알같은 글씨가 아니라
책을 쥔 손에 맺힌 작은 땀방울입니다.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

- e지식채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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