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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

드라마 '친구'는 전설을 만들어 낼까?

by 밥이야기 2009.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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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친구”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


▲   2009년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과연 시청자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2009년 드라마로 부활한 “친구 우리들의 전설”

곽경택 감독(부산,66년생)을 떠올리면 영화 “친구”보다 그 때 그 시절, 고등학교 친구들의 이미지가 떠오르기에 더 각별하다.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 지역, 학교배경이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과 판박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친구" 속 친구들이 바로 지난 시절 "친구야~"였기 때문이다. 몇 차례 친구 방송을 알리는 스팟 광고로 친구의 부활 소식을 은연중에 알게 되었지만, 토요일 날(6월 27일) 첫 회가 방송된다는 것을 방송 30분 전에 겨우 떠올렸다.

KBS 100분 토론을 보느냐, 친구를 보느냐 망설이다가 친구의 손을 들어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야 벽창호에 가까울 정도로 보는 고정 프로그램이 없지만, 친구만큼은 첫 회라도 보고 싶었다. 아녀린 추억 넘어 편린이라도 건저 보겠다는 기대심리가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의무감은 아니었다. “친구”는 사실 추억의 되새김질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친구로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곽경택의 친구는 800만 관람 기록도 기록이지만, 2000년도 초부터 이른바 추억 “학창시대 건달 느와르” 의 포문을 연 영화이다. 이후 ‘말죽거리 잔혹사’ 등 친구와 유사한 장르 영화가 숱하게 제작되었다. 오늘 따라 바람 한 점 없다. 무더위를 식혀 줄 바깥 풍경은 없지만, 드라마 친구가 혹시나 닫힌 가슴을 열어 줄 것 같아 사뭇 설레였다. 드라마 시간을 기다리다니, 세월 모를일이다.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캔 맥주와 오이 하나 고추장, 마른 멸치 몇 마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텔레비전을 켰다.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하 ; 친구)” 타이틀이 흑백으로 흐른다. 컬러 방송시대는 전두환 정권이 열리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 세상은 컬러였지만 흑백시대였다. 흑백논리가 세상을 지배했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컬러 방송이 시작되면서 흑백세상의 논리에 프로스포츠와 맹목적애국주의가 결합되어 더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다. 아직 한국은 현대사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흑백에 컬러만 덧칠한 셈.

마치 오늘 저녁이나 내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안 것처럼, 첫 장면은 비가 내리는 장면으로 첫 회의 서막을 연다.
드라마 친구는 2시간 남짓 압축된 영화 친구가 아니다. 곽경택 감독이 “연출의 변”을 통해 이야기 했듯, 영화 친구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겠다고 했다. 영화 친구가 “향수, 우정, 건달” 트리오였다면 여기에 “사랑”을 심어 넣겠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사전 100%제작이라는 홍보 간판을 걸며, 인기 드라마의 늘어지기식 버티기, 짜깁기를 지양하겠다고 이야기 했으니, 지금은 연출자의 변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흑백시대의 친구들

뚜껑은 열렸다. 드라마는 예상했듯, 역순으로 시작된다. 1990년 부산에서(극중의 현재 시점에서) 시작, 1974년 부산,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386세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다양한 추억 도시락이 열리기 시작한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서툴러 보였지만, 부산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소품들. 기억 저편 책상 서랍 속에 담겨 있던 풍경들을 끄집어 나열시킨다. 나무책상, 분필, 돌려 돌려 야바위 번데기 뽑기, 골목길, 바다가 보이는 옥상 등 파노라마처럼 많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은 드라마 친구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배역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영화 친구의 주연으로 등장했던 유호성(김민준)과 장동건(현빈)의 캐릭터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이 역을 드라마에서 승화시킬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유호성 VS 김민준(극 중 이준석 역)



▲장동건 VS 현빈(극 중 한동수 역)


 
드라마 친구의 상징

 친구. 시대마다 친구의 의미는 다를 수가 있을 것 같다. 80년대의 친구를 들먹이면, 자라나는 세대들의 친구들과 어떻게 단순 비교해서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친구는 이른바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암울했던 과거 군사정권의 시대였다. 1980년 광주 5.18 항쟁과 1987년 6월 항쟁 등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압축 고난의 시대였다. 이른바 학원자율화, 교복자율화, 개인 과습 폐지 등 다양한 사회 흐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때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특히 부산은 제 2의 수도로써 다양한 유행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던 지역이었다. 민주주의 후퇴를 이야기 하고 있는 현 시국에서 드라마 친구는 과연 어떻게 읽혀지고 해석될 것인가.

 
영화 친구 VS 드라마 친구

첫 회를 보고 섣불리 드라마 친구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드라마는 영화하고 달라야 한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드라마 친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우선 영화 친구의 이미지를 지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혹시 영화 친구를 보지 않은 시청자라면 드라마 친구가 끝날 때까지 영화 친구를 보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영화 친구와 드라마 친구를 단순 비교해서 평가하기 보다는 드라마로써 친구를 지켜보고 평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화에서의 스토리텔링과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은 분명 다르다. 영화의 짧은 호흡에서는 강한 캐릭터와 상징 압축성이 긴장감 있게 녹아나야 하지만, 단막 단막 이어가야 하는 드라마의 경우는 한 회의 완결성도 중요하지만 이어 나가는 이야기의 구조가 더 탄탄해야 한다. 어쩌면 영화보다 드라마가 더 힘들 수 도 있다. 망가지겠다고 포기하지 않는 이상. 19금 드라마 친구. 폭력장면은 희미하고 소리만 살아 있다. 친구는 영화 친구를 넘어  드라마 모래시계가 세웠던 기록을 갈아 치울 수 있을까? 물론 모래시계처럼 퇴근길을 재촉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2009년 드라마 친구의 메타포는?

 
맺는 글

드라마는 드라마 일 뿐이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드라마를 통해 잊혀졌던 과거를 다시 생각해 보고 떠오르는 친구의 모습만 있으면 그뿐 큰 기대는 말자. 드라마는 드라마 아닌가. 친구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고, 그렇지 않는 세대들은 지난 선배의 역사를 떠올리면 부모세대나 선배세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그뿐. 지나친 기대는 작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산 갈매기도 부산 친구도 잠든 새벽 드라마 친구보다 그리운 친구들이 이름들이 떠올랐다 아련히 멀어지고 있다. 드라마 친구의 어설픈 감상문이 마지막 감상문이 될 것 같다. 아무쪼록 곽경택 감독이 연출의 변에서 밝혔듯 사랑도 좋지만, 시대상을 보여 줄 수 있는 역사인식 또한 살려 내길 기대해 본다. 잘 있는가 친구들아. 드라마 친구를 보면서, 잊혀진 친구들을 떠올려 보는 것 또한 잊지말자. 친구따라 강남 갈 필요는 없지만.


 ▲드라마 친구가 아니라 현실의 친구들을 찾아... 



100자 평

예산 때문인가? 시간 촉박해서? 아역들의 연기와 조연들의 연기도 서툴다. 야구장 경기 재현도 어색해 보인다.
시대의 아이콘들이 살아 날려면 빛나는 조연들의 연기가 살아나야 한다. 기다려 볼 수 밖에. 첫 회니 넘어가자.
그나저나, 친구가 대박나면 KBS 100분 토론은 누가 볼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