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밥

테레사 메이, 영국 청리 대처이후 26년 만에?

밥이야기 2016. 7. 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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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캐머런 총리 측은 “메이 장관이 보수당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레드섬 차관이 사퇴한 상황에서 우리는 보수당 경선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하고 능력있는 메이 장관이 차기 총리가 돼 기쁘다”고 밝혔다. 이렇다면 어떤 영향을 전파할까?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과 조화를 이루는 협력 체제 구축하려는 뜻일까? 테레사 메이(59) 내무장관. 영국 차기 총리에 여성 총리는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이다. 보수당 대표 결선에 함께 오른 앤드리아 레드섬(53) 에너지차관이 사퇴의사를 밝히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역시 즉각 총리직을 넘기기로 결정하면서다. 캐머런 총리는 13일 각료 회의를 진행하고 하원에 출석해 총리로서 마지막 질문을 받은 뒤 최종 사퇴 의사를 밝힐 예정이다. 국민투표, 총리의 사퇴 발표, 집권당의 분열, 물고 물리는 배신, 후보 사퇴. 지난달 23일 치러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유럽연합(EU) 탈퇴’로 결론난 뒤 영국에서 18일 동안 벌어진 정치 드라마다. 차기 총리 겸 당 대표를 결정할 전당대회를 앞두고 곡절을 거듭했던 보수당 내분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리드섬은 경선을 포기하라는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이날 사퇴를 결정했다. 리드섬은 “25%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로는 강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서 경선 1차 투표에서 보수당 전체 의원 6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메이에게 힘을 실어줬다. 버밍엄에서 경선 유세 중이던 메이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런던으로 발길을 돌렸다. 메이는 “영국 총리가 되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라며 “앞으로 있을 도전에 영국이 대비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는 옥스퍼드대학을 나와 영국은행(BOE)에서 일했다. 런던 지방의회 의원을 거쳐 1997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 보수당이 정권을 잡은 직후 입각해 최장수 내무장관 기록을 세웠다. 웨스트민스터에서 추진력이 강하고 상황 판단이 빠른 정치인 중 하나로 꼽힌다. 언론은 흔히 대처에 비교하지만, 차분히 상대를 설득하는 정치 스타일은 ‘영국의 앙겔라 메르켈’에 가깝다. 영국 언론들은 향후 EU와의 협상에서 메르켈을 상대할 사람은 메이뿐이라고 했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메이를 “메르켈처럼 조직적으로 행동하는(methodical) 사람”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메르켈과 달리 패션감각이 뛰어나고 ‘신발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암살당한 파키스탄 정치지도자 베나지르 부토와는 옥스퍼드대 재학시절 친밀한 사이였다. 남편인 필립 존 메이는 금융인으로, 대학시절 부토의 소개로 만났다. 가디언은 메이가 14일쯤 총리직에 오르고, 15일에는 새 내각을 선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텔레그래프는 이르면 11일이나 12일 중에라도 총리가 교체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전당대회 때 총리직을 넘기겠다면서도, EU 탈퇴 협상은 차기 총리에게 넘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수당 대표 경선을 감독하는 원로그룹 1922위원회는 이날 오후 회동을 갖고 메이를 지도자로 공식 확인했다. 리드섬은 경선 내내 메이와의 승부를 뒤집을 원동력을 찾지 못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탈퇴파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혼란이 이어지자 이쯤에서 발을 빼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리드섬이 한 발언은 치명타였다. “내게는 자녀가 있지만 메이는 그렇지 않다”며 메이의 개인사를 공격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은 것이다.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조기 총선을 주장했으나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제 보수당에서 탈퇴파들은 모두 물러나고 잔류를 주장한 메이가 EU와의 협상을 떠안아야 할 운명이 됐다. 메이는 11일 유세에서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라며 “2차 국민투표나 지난 투표 결과를 되돌려 EU에 남으려는 시도는 없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