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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영화

영화 언싱커블, 고문은 정당화 될 수 있나?

by 밥이야기 201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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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뮤엘 잭슨이 고문기술자로 출연하는 언싱커블(Unthinkable). 영화 제목처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과연 정의는 무엇인가를 고민해 주게 하는 영화다. 지난 시절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을 고문했던 이근안의 얼굴도 겹쳐 떠오른다. 박원순 변호사가 쓴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역사, 한국 근현대사의 고문문제를 다룬 '야만시대의 기록'을 읽어보면 민주화를 이루기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숨졌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문을 자행한 사람입장에서는 자신이 세운 정의의 관점에서 고문을 정당화시켰다.


정의(Justice)는 무엇이고, 법은 무엇이고, 고문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언싱커블을 보면서, 하버드 학생에게 ‘정의’란 주제 하나를 놓고 강의를 해서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떠오른다. 센델 교수는 다양한 사례를 놓고 정의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사고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아프카니스탄에 파견된 미 해군 특수부태 실 소속 대원들은 한 산악 마을에 밑에서 머물며 정찰을 하고 있었다. 임무는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휘자들을 찾기 위해서다. 이들은 정찰 중에 100마리의 염소를 몰고 가는 농민 두 명과 만나게 된다. 만약 실 부대원들의 장소가 노출된다면 자신들이 공격 받을 수 있기에,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농부들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풀어 줄 것인가. 왜냐면 자신들이 있는 장소 이외에는 다른 은신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원들은 논쟁 끝에 농민들을 풀어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탈레반의 공격으로 병사 중에 여러명이 숨지게 된다.

 

도덕적 딜레마. 영화 언싱커블은 딜레마에 빠진 고문기술자와 FBI 요원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어느날 미국인 출신 아랍인이 자신이 미국의 세 도시에 핵폭탄을 설치해 두었다는 비디오를 제작 언론에 돌린다. 그리고 스스로 체포된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받게 되는 범인(마이클 쉰 역)은 끝까지 고문을 참아낸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까지 살해당하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들, 딸이 고문당하는 상황에 서자, 실토를 하게 된다. 세 개의 핵폭탄이 있는 도시의 주소를 알게되지만 고문기술자는 한 개의 핵폭탄이 더 있다면 범인의 자녀를 고문할 것을 주장하게 되고........ 여기에서 고문은 합법이 아니다. 핵폭발로 숨질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희생을 시켜서라도 고문을 가해야 한다는 사람과, 범인의 자식까지 고문해가면서 인륜을 파괴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 의견이 충돌한다. 범인 입장에서는 아랍권에 파견된 미국군대를 철수해야 한다는 생각뿐. 그 또한 범인이 생각하는 정의다.



언싱커블은 영화적 재미와 긴장감을 넘어, 현실의 딜레마가 담긴 영화다. 고문은 인간이 만든 야만의 시대의 가장 큰 잔재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문은 어떤 극한 상황에 도달할 때 보편적 가치가 우선이냐, 아니면 생존의 문제와 결부될 때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시사해주고 있다.  고문기술자의 선택이 맞느냐, 아니면 범인의 말을 믿을 걷인가? 범인의어린 자식들을 죽이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핵폭탄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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